환원주의를 대략적으로 정의하면, 어떤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는데도 그 중 소수의 원인만으로 그 현상을 설명하는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인문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이 환원주의적이라고 비판한다. 그런데 그들은 인간의 행동을 성적인 것으로 환원하는 정신분석학에 열광한다. 왜 이 두 가지 환원에 대해 완전히 상반된 태도를 보이는걸까? (게다가 방법론 면에서나 경험적 근거 면에서나 정신분석학이 생물학보다 열등한데 말이다.)

덧붙이자면 사회생물학이 다루는 것은 인간 행동의 여러 측면 중에서 '기원'에 관한 것에 불과하다. 어떤 행동이 생겨난 진화적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지, 모든 사람들이 꼭 그렇게 행동한다는 것이 아니다. 이 둘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가 '유전자 결정론'에 대한 내용이라면서 비판한다. 실제로는 '유전자 선택론'에 대한 책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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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내가 친구한테 '기능성 게임 같은 것들은 왜 항상 재미가 없을까'하고 장난삼아 물어봤는데 친구의 대답이 인상깊다.
'블X자드나 유X소프트 같은 대형 게임 회사에서 오로지 재미만 생각하며 만들어도 재미 없는 게임들이 많은데 목적이 주객 전도된 게임들이 재미가 있을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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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STS‘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의 약자로, 과학기술과 사회∙정치∙문화 등이 주고받는 영향에 대해 연구하는 분야이다. 그런데 과학기술이 사회∙정치∙문화에 영향을 준다는 점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데, 반대로 사회∙정치∙문화가 과학기술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 왜 우리가 STS를 알아야 할까?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사람은 과학기술만을 연구하면 되지 않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이 책은 과학을 둘러싼 다양한 네트워크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답을 제시한다.

 

이 책은 1장부터 4장까지 네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인 인간과 비인간에서는 테크노사이언스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테크노사이언스란, 과학기술을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 형태로 이해하는 것이다. 여기서 비인간이란 연구 대상이 되는 자연, 연구에 쓰이는 실험 기구 등 인간이 아닌 것들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그렇다면 과학기술을 인간과 비인간의 네트워크로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의의가 있을까? 먼저, 과학과 기술의 엄격한 경계가 사라진다. 일반적으로 순수과학의 한 분야로 간주되는 천문학도 실제 모습을 보면 각종 복잡한 기기들을 조작하는 일이 연구 과정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또한 테크노사이언스 개념은 과학과 사회의 연결에 주목하게 해준다. 과학 또한 인간의 활동이므로 다양한 사람들과 사회 집단들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네트워크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장은 네트워크로 보는 테크노사이언스이다. 과학 지식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이라는 통념과 달리, 실제 과학 지식은 그것이 속한 네트워크에 의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으로 심장마비 환자의 생존율은 2.5% 정도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 대다수가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스웨덴에서는 생존율이 14%에 달한다. 한국에서도 아파트 1층에 사는 사람이 10층 이상에 사는 사람보다 생존율이 4배 이상 높다. 이와 같이, 네트워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심장마비 환자의 생존율이 2.5%라고 말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편 새로운 이론의 전파도 복잡한 네트워크의 영향을 받는다. 어떤 이론도 완전한 백지 상태에서 갑자기 나타날 수는 없다. 그 이론의 기반이 되는 선행 이론들이 필요하고, 이론을 뒷받침해 줄 도구가 필요할 때도 있다. 이러한 점을 잘 보여주는 예가 다윈의 진화론이다. 진화론은 분류학, 동물학, 식물학, 지질학 등의 선행 이론을 토대로 나온 이론이다. 한편 진화론의 몇몇 아이디어를 통해 사회 발전을 설명하려던 사회진화론이라는 이론도 존재했다. 서양에서는 진화론과 사회진화론의 관계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루어지면서 이 두 이론의 차이에 대한 확실한 인식이 생겨났다. 반면에 분류학 등의 선행 이론들이 부재했고, 진화론과 사회진화론의 관계에 대한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진화론과 사회진화론이 같은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세 번째 장은 과학철학적 탐색이다. 이 장에서는 과학 지식의 본성에 대한 철학적 입장들을 소개한다. 과학 지식은 잘 확립된 토대를 바탕으로 견고하게 쌓여가는 것이라는 통념과 달리, 과학 지식의 토대는 확고하지 않다. 과학철학자 장하석은 물의 끓는점을 둘러싼 역사적 논쟁을 통해 이러한 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바와는 달리, 1기압에서도 물이 정확히 섭씨 100도에서 끓은 경우는 거의 없다. 끓는 물의 온도가 섭씨 100도씨가 나오게 하려면 물에 공기가 어느 정도 녹아 있어야 하고, 물을 담는 용기는 금속이어야 한다. 게다가 물 자체가 아니라 물 표면 바로 위의 증기의 온도를 재야 한다. 물이 섭씨 100도에서 끓는다는 것은 물의 본성이고 확실한 지식인 것처럼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특정한 실험 조건에서 과학자들이 합의를 하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 것뿐이다.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토대가 잘 다져진 믿음의 토대에 토대가 없는 믿음이 놓여 있는 것이다.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실 자연법칙이라는 개념은 16세기 이후에 나타났다. 자연이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법칙에 따른다는 개념의 등장은 강력한 왕권을 기반으로 한 중앙집권적 국가가 생겨나던 당시의 시대상과, 신이 자연에 질서 있는 법칙을 부여했다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과학철학자 낸시 카트라이트는 중력에 대한 사고 실험을 통해 자연법칙의 존재에 의문을 제기한다. 우주에 오직 두 물체만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자. 이런 경우 둘 사이의 인력은 중력 법칙( )을 그대로 따를까? 아니다. 둘 사이에 전자기력도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히 중력과 전자기력을 둘 다 고려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중력 법칙은 실제로는 훨씬 복잡한 자연 현상 속에서 단순한 연관관계를 뽑아낸것이라는 뜻이다. 일반화하여 말하면, 자연이 수학이라는 언어로 쓰인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자연에서 수학적 관계를 만족하는 변수에만 초점을 맞춰서 연관관계를 만들어 낸 것이다.

네 번째 장인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서는 학문간의 융합, 과학 활동에서 성공적인 팀과 리더십, 과학의 불확실성, 과학자의 책임 등의 주제를 다룬다. 앞의 장들이 과학 지식의 본성에 대해 초점을 맞췄다면, 이 장은 과학 연구가 이루어지는 방식에 좀 더 주목하고 있다.

현대 과학은 천재 과학자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연구에 몰두한다고 해서 의미 있는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과학 연구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과학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연구팀의 팀워크, 조직 문화, 리더의 리더십은 과학 연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맨하튼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군사적 목적의 연구에서 군대의 조직 문화와 과학자들의 조직 문화의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하고 이를 적절하게 조율함으로써 프로젝트의 성공을 이끌었다.

한편 사람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과학 지식을 결정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일어났던 백신과 자폐증의 연관성에 대한 논쟁이 한 예이다. 이 논쟁에서 백신이 자폐증을 일으킨다고 주장하는 집단과 그렇지 않다는 집단 모두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지만, 두 집단의 논리 모두에 결함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신은 자폐증과 연관이 없다는 결론이 났는데, 이는 백신이 무해함을 주장하는 정부, 제약회사, 주류 의학계의 연대가 반대 집단들의 연대보다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책에는 과학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생각해보게 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그 중에서 특히 1장에서 언급되는, ‘암묵지에 대한 내용은 더 깊이 생각해 볼 만한 것 같다. 암묵지란 명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경험을 통해 체화된 지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우리는 자전거를 탈 때 어떻게 다리를 움직이고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지 일일이 생각하지 않지만, 경험을 통해 익힌 감각을 통해 자전거를 탄다. 이것은 우리에게 자전거를 타는 방법에 대한 암묵지가 있기 때문이다.  

과학 연구에서도 암묵지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광범위한 이론에서 중요한 것을 파악하고 연구에 적용하는 능력, 유의미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실험을 설계하고 수행하는 능력, 복잡한 데이터 더미에서 주목할 만한 내용을 포착하는 능력 등은 언어만을 통해서는 전달받을 수 없다. 다른 연구자들과의 접촉을 통해 직접 배우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체화된 암묵지가 필수적인 것이다.

우리는 과학활동이 명확하게 정의된 이론과 논리적으로 설계된 실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 과학 활동은 몸으로 습득한 경험에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점은 우리가 간과하기 쉽지만, 과학의 본질적인 면 중 하나일 것이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STS 키스라는 말을 소개한다. 과학자들이 STS를 접하면서 과학만을 맹신하는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게 되는 일을 가리키는 말이다. STS는 과학을 둘러싼 복잡한 네트워크, 즉 인간과 자연의 관계, 연구자들 간의 사회적 교류의 역할, 과학의 사회적 의미 등, 과학 공부만으로는 알기 힘든 중요한 점들을 성찰하게 해준다. 따라서 STS를 접하면 과학지상주의라는 독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이 독자들에게 STS 키스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책에는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통념들을 뒤집고, 흔들고, 깨부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게다가 자칫 추상적으로 흐를 수도 있는 내용들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STS가 던져주는 통찰이 구체적으로 다가오게 해준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저자가 희망한대로, ‘STS 키스의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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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나치가 집권하던 당시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유대인들이 탄압받는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기보다는 두 소년을 둘러싼 사건들을 통해 그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나치즘, 홀로코스트를 직접적으로 그려냈다기보다는 그 시대의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하는 매체는 차고도 넘친다. 내가 본/읽은 것만 해도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피아니스트>, <사울의 아들>, 만화 <쥐> 등이 생각난다. 그밖에도 수많은 문학작품, 논픽션, 영화, 다큐멘터리 등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홀로코스트 관련 매체들을 두고 굳이 이 소설을 읽을 이유가 있는가?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두 소년의 우정이 이 소설의 중심 축을 이룬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은 너무나 거대해서 개개인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개개인의, 어쩌면 사소해보일 수도 있는 행동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주인공의 친구는 나치즘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은 것은 주인공과의 우정 때문이었다. 나치즘 같은 무시무시하고 잔혹한 이념이 우정이라는 소소한 감정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처럼, 억압하는 사람들과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자주 마주대했다면 역사의 수많은 비극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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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1. 글을 쓰며 맞춤법을 고민하다가 문득 든 생각. 우리는 맞춤법이 어렵다고 불평하지만, 맞춤법을 언제 한 번 제대로 공부한 적이나 있나?

2. 시간의 흐름을 의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갔다는 점만 의식하는 것 아닐까?

3. 너무나 당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4. 인식할 수 있는 존재자가 없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철학적 입장이 있다.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 '의미'는 '존재'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일까? 

5. 밤에 그림자를 보고 큰 새가 날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가로등 주위를 맴돌던 나방일 뿐이었다.

6. 추억을 함께한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리면 그 추억은 평범한 기억으로 전락한다. 

7. 무언가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을 때의 효용보다 크다. 박탈감이라는 요소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8.자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남에게 큰 고통을 주는 행동이 있다. 여기까지는 고의가 아니므로 용서받을만 한데, 상대방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인지하면 그 행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9. 실질적인 도움이 아닌 응원은 그저 희망고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10. 페이스북의 생일 축하는 대개 진정성이 없다.

11. 우리나라 역사는 '자랑스러운' 역사인가? 역사 교과서는 국수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것 같다.

12.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항상 고통스럽다.

13. 나는 '특기'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14. 많은 사람들이 자기 취미가 '음악 감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음악은 다들 좋아하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듣는다. 음악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취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취미가 음악이라는 말은 정말 음악 매니아인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15. 내 이야기를 굳이 다른 사람이 읽게 할 이유가 있을까?

16. 태어날 때부터 완전히 혼자서 자라서 다른 사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외로움을 느낄까? 이 질문은 내가 오래 전부터 고민해온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애착의 반동으로 생기는 것이다.

17. 나는 대체가능하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세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18.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일은 악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논리적인 근거가 없다. 당위적인 명제와 감정을 고양시키는 말들('감성팔이')에만 기반을 두고 있을 뿐이다. 

19. 하찮은 것 하나하나에 신경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것 하나하나가 모여서 전체를 만든다. 

20.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자신의 두려움, 절망, 비관주의, 허무함, 좌절의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다른 일 탓으로 돌리면 안된다. 자기가 느끼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우회하려고 하면 또다른 장애물을 만날 뿐이다.

21. 영화는 대개 다시 보면 재미가 없다. 반면 대부분의 음악은 여러 번 들어서 어느 정도 귀에 익어야 좋아진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22.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한다. 하지만 그 능력이 타고난 재능에서 온 것이라면, 그 사람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23. 사람들은 먼저 판단하고 그 후에 근거를 덧붙인다. 특히 정치에 대한 의견에서 그렇다.

24. 인간의 감정은 심하게 요동치는 불안정한 것이다. 이성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25. 아무리 가까웠던 사람이라도 한순간에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26. 위대한 인물들이 겪었던 실패를 나열하면서, 그런 실패는 당연하고 이겨내야 할 과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위대한 인물들의 실패 사이사이에 있었던 성공들을 비롯해 실패를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준 다른 요인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런 요인이 없는 사람이 작은 실패에 좌절하면 온갖 비난을 다 해댄다.

27.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 진로에 대한 강연을 들어보면 많이 나오는 말들이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다든지, 무엇을 하든 길은 있다든지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 말들은 그들이 성공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할 것이다.

28. 무언가 엄청나게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모세혈관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일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29. 서로의 신념이 '완전히' 대립될 경우 만족스러운 합일점을 찾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 종교 가지고 논쟁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30. 감정이란 순간적으로 요동치는 것이어서, 죽을 만큼 절망에 빠져 있다가도 사소한 일 하나로 즐거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즐거움에는 다시 절망에 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섞이기 마련이다.

31. 아무리 친밀한 사이여도 한 번 어긋나면 그 틈은 점점 벌어진다. 틈이 작을 때 빨리 해결해야 한다.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일단 사과하고 나중에 해결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32. 감정적으로 흥분한 사람에게 그대로 맞서면 안된다. 일단 그 폭풍을 가라앉힌 다음에 생각해야 옳다. 이성을 잃은 사람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길 바라는 것보다 비이성적인 것은 없다.

33.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그 책에서 얼마나 적은 부분만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34. 많은 사람들이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져 있다. 또는 특정 과학 이론의 반대자들이 그 이론에 자연주의를 자의적으로 덧씌운 뒤 비난하는 일도 잦다. 유전자 결정론이 사실이라고 해서 그것이 차별, 범죄, 특정 이데올로기 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가치 판단은 가치 판단대로 따로 해야 한다.

35. 다른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는 일을 나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36. 심심한건지 공허한건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심심하다면 재미있는 게임 몇 판 하면 되겠지만 공허한데 그런 일로 해결하려고 하면 시간낭비일 뿐이다. 내가 그랬다.

37. 뭐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어떨까? 마음 내키는 대로 했을 경우와 절제했을 경우를 비교해서 더 좋은 쪽을 따르면 될 것이다. 문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38. 동해 표기도 이기적인 것 아닌가? 일본 입장에서는 자기네 땅 서쪽에 있는 바다를 동해라고 표기하는게 당연히 못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동해 또는 한국해는 그냥 옛날에 통용되던 명칭일뿐 공식적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매국노라고 비난받겠지? 하지만 나는 애국자가 되기보다는 코스모폴리탄이 되고 싶다.

39. 어떤 능력이 다른 능력을 통해 평가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자기소개서, 면접은 작문실력, 화술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40. 인간의 본질은 정해져있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가야되는 거라면, 인류 전체의 본질도 정해져 있지 않고 인류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41. 지금의 일본인들은 조선을 강탈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의 일본인들'이 잘못이 없다는 것일 뿐, 일본이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때의 일본인과 지금의 일본인은 다르지만, 그때의 일본은 지금의 일본이다. 5살때의 내가 21살의 나인 것과 마찬가지다.

42. 5살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나'인가? 내 몸을 이루고 있던 분자들은 모두 달라졌을텐데? 이런 문제에 마주치면 결국 형이상학적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를 우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43. 현재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하지만 과거에는 군주제에 반대하는 것이 말도 안됐다. 훗날 완전히 새로운 정치체제가 등장한다면 우리가 군주제를 비웃는 것처럼 그때에는 민주주의를 비웃을까?

44. 세상은 사실 무채색이다. 그래도 우리는 색깔을 본다.

45. 책은 장식용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 똑같이 만들었겠지. 아니, 다 다르게 만들어서 장식용이 된건가?

46. 스티브 잡스가 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했다 어쩌고 떠들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다는 설명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인문학이라기보다는 인간공학에 가까워 보인다.

47. 이쪽에서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널려 있고, 저쪽에서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널려 있다. 슬프다.

48. 익숙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일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두 생활 사이에 언제나 간극이 있기 때문이겠지.

49. '합리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어질 수 있는지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한참동안이나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었고 죄송스러움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경험이었다.

50. 취향을 무조건 존중해줄 필요는 없다. 취향은 그 사람의 안목을 드러내기도 한다.

51. 삶이 총체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문제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52. 말로 표현할 없는 어떤 깊은 감정을 느껐다. 기대에 부흥하가 위해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오히려 무표정으로 있고 싶었다.

53. 나는 '뭔가', '왠지', '어떤' 같은 모호한 표현들을 즐겨 쓴다. 어휘력이 부족하다기보다는, 내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할 어휘가 없기 때문이다.

54. 참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조금 다른 것 같다.

55. 진실을 알려줬더니 의지할 곳이 없어졌다고 화를 내는 사람.

56. 콜라를 기품있게 마시는 법이 있을까?

57. 성숙해진다는 것은 점점 많은 것을 포기할 알게 된다는 것이다.

58. 유로파의 바다를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59. 편의점에서 라면 데우고 있는데 밖에서 차 사고가 난다면, 나는 그 모습을 보러 갈 것인가, 아니면 비위가 상하지 않고 라면을 먹고 싶어서 무시할 것인가.

60. 늙기 전에 죽고 싶다는 노래 가사에 감동하던 때도 있었고, 죽기 위해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61.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라 원하는 사람이 없어서 생긴다.

62. 우울은 중독성이 있다. 다른 생각을 하면 어느 정도 벗어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우울함에 빠져 있고 싶어한다.

63. 스위치 꺼지듯 잠들 있었으면 좋겠다

64. 계속 깜박이던 전등 불이 완전히 나가버렸다. 이제 전등까지도 나를 무시하나 싶어 기분이 나빠졌다.

65. 생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래도 다른 날들과는 다르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는 그런 기대 때문에 훨씬 우울해진다.

66. 일반적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보다 정중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자어가 고유어보다 격식 있는 표현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고맙습니다' 반말로 '고마워'라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반말 형태가 없다는 점도 한몫 하지 않을까 한다.

67. 기계와 생체의 결합에서 느껴지는 그로테스크함은 물활론의 잔재가 아닐까

68. 어떤 사람의 주장에 대해, 그것이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면  내용이 아무리 옳더라도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 있다.

69. 감정을 발명할 수 있을까?

70. 
: 빨리 AI 발전해서 사람들이 하고 있게 됐으면 좋겠다.
친구G: 그렇게 되면 문화나 엔터테인먼트 창작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겠네

71.
동생: 게임 정품 산다고 좋은 것도 없잖아.
: 가게에서 과자 훔쳐먹어도 맛은 똑같잖아.

72. 외로워서 우울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우울해서 외로워지는 경우는 없다. 싫어서 화가 나는 경우는 있어도 화가 먼저 나고 싫어지는 경우는 없다. 이런 보면 감정들 사이에 순서나 위계가 있는 같다.

73. 우울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정말로 그렇다. 그래도 역시 우울한건 성가시다.

74. 사람들은 나쁜 사람을 강하게 욕할수록 자신이 도덕적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같다

75. 목표가 없으면 무엇을 해도 공허하다.

76. 어떤 사람은 카드 뉴스가 효율적인 방법이고, 기존 형식과 다를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각은 다르다. 카드 뉴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짧고 쉬운' 콘텐츠들이 많아지고 있다.

77.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열어보게 된다.

78. 예술 작품 감상에 정답은 없다? 맞는 말이다. 정답은 없다. 그런데 오답은 있다.

79.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작품'이라는 평가. 그래서 그 많은 생각은 다 어디 갔을까?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하면서, 딱 거기에 그쳐버린 것은 아닐까?

80. '이유'에는 이성적인 이유와 감정적인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만을 합당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81. 페이스북에 길고 진지한 글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길고 진지하기만 하면 바보같은 내용의 글이어도 사람들이 떠받들어준다.

82. 읽는 자체가 숭고한 일인 마냥 목적도 없이 무턱대고 읽지는 않을 생각이다좋은 책을 읽는 행위는 좋은 것인가? 아니다. 책은 좋아도 책을 읽는 행위에 목적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83. 한국의 도시들에 활기는 존재하지만 활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취기에서 나온 활기와, 활력에서 나온 활기.

84. ‘소나기동백꽃 무렵같은 소설을 지금 같은 시대에 쓰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멍청이겠지

85. 가끔 우리나라에 대해 비판하면 국가가 너한테 이만큼 주니까 고마운 알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논리 펼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국가는 봉사기관이 절대 아니다. 개인이 사회, 경제 활동을 하는 자체가 국가에 5천만 분의 1 역할을 주는 것이다. 국가는 그에 대해서 5천만 분의 1 보답을 주는 거고개개인이 국가에게 해주는 것과 국가가 개개인에게 해주는 것은 등가교환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등가교환이어야 한다'. 거기서 몫을 받지 못한다면 결손분에 대해 요구하는게 당연하다따라서 애국심은 가져도 되고 가져도 된다. 가게에서 물건을 가게 주인에게 친근감을 느껴도 되고 느껴도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86. 피장파장의 오류는 논리적 측면에서 보면 분명 오류지만, 현실적으로는 마냥 오류로 취급하기는 무리가 있다.

87. 단순히 재미 없다는것만이라면 의지만으로 극복할 있다. 하지만 내가 이걸 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그리고 심지어 그걸 넘어서 '무언가' 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품으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

88. 나는 더 강한 마음을 가지기에는 오만함이 부족했다.

89.  친구에게 내가, 그리고 내가 친구에게 필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 서운했다. 친구 개인에게가 아니라  세계에게 서운했다. 필연성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게 서운했다

90. 잔디밭을 만들어놓고서 들어가게 하는게 자연'친화'적인건가? 그냥 겉모습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것에 불과하지 않나잔디밭에 들어가면 잔디가 손상되니까 그렇다면... 그저 보기 위해 손상되는 식물을 심어놓고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게 옳은 건가? 사람 발에 밟혀도 자라는 풀들은 '잡초'라며 없애버려놓고.

91. 누구나 사소한 결정 하나하나에도 고민한다. 그런데 누구나 그러는 것을 가지고 '결정장애'라는, 의학 용어처럼 보이는 그럴 듯한 말 하나를 붙여서 장애 취급한다.

92. 밥을 하루에 먹어야 한다는 것도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93. 자기관리라는 말은 상당히 폭력적으로 쓰일 때가 많다.

94. 자기 좌우명이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 디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정말 쓸데없는 좌우명이다. 현재가 즐길만 하면 그런 좌우명을 되새기지 않아도 그냥 즐기면서 산다. 반면에 현재를 즐길 만한 여건이 되는 사람은 저런 소리 되새겨봤자 비참해지기만 한다. 매일매일 엿같은 일밖에 없는 사람한테 현재를 즐기라고 해봤자 즐길게 없거든.

95. '가끔 문화 생활도 해야 '라는 담론. 뭣하러?

96. 소장가치라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보석같은 것, 말하자면 쓸데는 없지만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은 . 그런 건가?

97.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아니라는 다들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이런 말로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98. 국어 파괴 어쩌구저쩌구 하면 '세종대왕이 슬퍼하실거다'하는 말이 상투적으로 나오는데, 세종이 만든 국어가 아니라 한글이니 국어 파괴랑 세종이랑 상관 없는 ?

99. 북유럽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혈당이 높다. 이는 추운 기후에 대한 적응의 결과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난방이 발달했기 때문에 높은 혈당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당뇨병 발병률만 높이고 있다. 우리가 관습 혹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도 이런 것들이 있다. 과거에는 필요했지만, 사회가 바뀌면서 오히려 해가 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미풍양속'이니 '뿌리깊은 전통'이니 하는 말로 미화하지 말고 뽑아버려야 한다.

100. 긍정이라는 말은그 자체로 긍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부정이라는 말은 자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띤다.  문제를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

101. 사람들이 신체적인 나약함에 대해서 비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정신적인 나약함에 대해서는 완전히 반대다. 체력이 약하다고 해서 비난받지는 않지만, 소위 말하는 '멘탈붕괴' 쉽게 하면 비난받는다물론 정신적인 나약함은 측정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정신적인 나약함에 대한 비난은 너무 혹독하다.

102. 역사 관련 책에서 무언가 가정을 때면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래도 생각해본다면~' 이런 말을 붙인다. 가정을  보는게 부끄러운 일이고 죄책감을 가져야 일인 듯이 말이다. 무언가를 가정하는 일을 통해 실제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103.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려면 일단 돈이 있어야 한다.

104.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멍청한 사람들이 있다. 생각을 안 해서 그렇다.

105. 비도덕적으로 생각되어 양심에 찔리거나 '왠지' 꺼려지는 일들이, 따져보면 딱히 비도덕적이라고 만한 근거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양심에 찔리거나 '왠지' 꺼려진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제한해야  충분한 이유가 되는 걸까

106. 종교와 과학의 대화니 뭐니 하는 글들은 결론이 죄다 뻔하다. '종교도 필요하고 과학도 필요하니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자'. 이런 소리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그런 결론이 가치있고 생산적이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눈에는 위선으로밖에 보인다.

107. '생활의 지혜' 하나. 조금 더러워 보이더라도, 빨래  양말 켤레 정도는 빨지 말고 놔둬야 한다.

108. "IQ만으로 모든 평가할 없다. EQ, MQ 등등도 모두 중요하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IQ 높으면 좋지 뭐.

109. 획일적이라는 비판  자체도 획일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획일적 교육'에 대한 비판들은 획일적이다.

110. 사람들은 '동양 사상'이라고 하면 ' 성현의 지혜' '고상한 정신적 가치' 하는, 말하자면 '동양의 신비'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같다. 사람들이 고민해온 주제들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111. 경계가 모호하다고 해서 나눌 없는 아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각각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경계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이상의 고찰이나 논의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는 모호하기 때문에 둘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식이다. 논쟁 중에 상대가 이런 논리를 들고 나오면 짜증난다.

112.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대한 비판보다는 세부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 더 건설적인 경우가 많다.

113.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관계조차도 가장 하찮은 우연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안타깝고 괴롭다. - 세상은 무채색이다.

114. 철학은 상식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가? 상식이 사실은 '상식'이 아니었음을 보이는 것이 철학의 본질 아닌가?

115.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인간의 가치 체계가 자연의 가치 체계와 무관하기 때문에 오히려 제약 없이 풍부해질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116. 인간관계에서의 합리란,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도 고려하는 것이다.

117.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을 기회가 없다.

118. 완전한 상태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는 없다. 약간의 포기가 필요하다.

119. 일본 문화 전반을 천박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120. 심심한 것과 공허한 것, 외로운 것, 우울한 것은 자주 혼동된다.

121. 선물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적이 거의 없어서겠지.

122. 누군가를 좋아해서 정말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123. '단어의 의미'라고 할 때의 '의미'와 '삶의 의미'라고 할 때의 '의미'는 같은 의미인가?

124. 겉으로는 살갑지만 속으로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람. 이런 부류는 조금 섬뜩하다.

125. 프로파간다도 극에 달하면 예술이 된다는 하나의 예. 고바야시 다키지.

126. 적절한 배경이 없다.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적절한 배경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제목을 '서울, 1964년 여름'이라고 바꾸면 쓸쓸한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127. 권위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권위자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권위에 의존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 GMO를 옹호하는 노벨상 수상자 100여명의 서명은 보도하지 않으면서 '일개' 요리사의 GMO 반대 칼럼을 실어주는 신문.

128. 모순되는 감정을 부정하지 말 것.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내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억지로 부정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다. 만약 내 감정이 비도덕적인 것이라면,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해보면 된다.

129. 한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말과 고구려의 정복 전쟁을 찬양하는 내용이 같은 책에서 나오는 아이러니.

130. 명백하게 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도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알았다. 답이 정해져 있다고 속단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131. 나는 내가 검소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구질구질해 보일 뿐이었다.

132.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이 문장은 너무 뻔한 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문장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문장이 진부하게 느껴져서 아무 감흥이 없다면, 다음과 같이 바꿔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어렵다.'

133. 픽션의 분위기를 진중하게 만드는 쉬운 방법은 종교적 알레고리를 넣는 것이다. 별 대단치 않은 이야기에도 종교 이야기가 슬쩍 끼어 있으면 왠지 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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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이루어진, 진화생물학자 피터 그랜트/로즈메리 그랜트 부부의 현장 연구를 소개한 논픽션이다. 그랜트 부부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몇몇 섬에 서식하는 수백~수천 마리의 새들에게 하나하나 표지를 달고 부리 길이와 체중 등을 측정하는 연구를 오랜 시간에 걸쳐 해왔다. 이 연구를 통해 그들은 복잡한 생물에게 일어나는 진화를 직접 관찰하고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진화가 바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진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실제로 관찰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며, 다윈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항생제를 남용하면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건 박테리아가 단순한 생물[각주:1]이기 때문이고, 복잡한 생물의 경우 그런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복잡한 생물에서도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는 진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랜트 부부가 연구를 하고 있던 섬 데프니 메이저에는 1977년에 큰 가뭄이 들었다. 그랜트 부부는 이 가뭄 전후에 포르티스라는 새의 부리 길이를 측정했다. 가뭄 전 이 새들의 평균 부리 길이는 10.68 mm이었는데, 가뭄 이후에는 11.07 mm로 약 1.4 mm의 변화가 있었다. 불과 몇 년 사이를 두고 현격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1.4 mm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변화지만, 이 새들에게는 10%가 넘는 변화다.) 이 가뭄 때문에 작고 부드러운 씨들이 적어지고 크고 딱딱한 씨들만 남자 크고 딱딱한 씨들을 깰 수 있는 큰 부리를 가진 새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뭄 한 번으로 새들의 모습이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데 왜 새로운 종들이 빠르게 생겨나지 않을까한쪽 방향으로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면반대 방향으로의 변화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후에 이 섬에는 홍수가 났는데, 이 홍수로 인해 작고 부드러운 씨들의 비율이 늘어났다. 몸집이 작아 별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작은 부리를 가진 새들이 생존에 훨씬 유리해진 것이다. ‘진화는 종을 한 방향으로 빠르게 밀어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는 방향을 바꿔 그것을 똑같이 뒤로 빠르게 밀 수도 있다.’(151)

여기서, 진화가 계속 방향을 바꿔서 일어난다면 계속되는 진동만 있을 뿐 실질적인 진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겠다. 가끔 심심풀이로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는데, 여기에도 진화가 이쪽 방향으로도, 저쪽 방향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설명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지의 칼럼이 있었다. (<리뷰> 앞으로도, 뒤로도, 옆으로도 나아가는 진화. : 진핵생물이 진화하여 원핵생물이 되었다?) 이 칼럼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순히 진화가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고만 설명하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진화론은 진화가 일어나게 되는 원리(자연선택)까지 설명하고 있다. 만약 환경의 변화로 인해 진화가 한 쪽으로 일어나도록 압력이 가해진다면(예를 들면 가뭄이 매우 오래 지속되는 것 같이) 실질적인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충분히 의미있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과학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책의 내용과 관련 있는 또 다른 (멍청한) 칼럼 하나를 보자(코끼리들은 밀렵 때문에 더 작은 엄니로 진화했는가?) 이 칼럼에서는 종 내에서 약간의 변화는 일어날 수 없어도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칼럼에서는 그 이유를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은 유전체에 새로운 정보를 추가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각주:2]

하지만 자칭 창조'과학'자들의 망상과는 달리 유전체에 새로운 유전 정보가 추가되는 메커니즘이 여러 가지 존재한다. 이 책에는 그 중 한 가지가 소개되어 있는데, 바로 잡종이다. 많은 경우 잡종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지만,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원래의 종들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 경우 두 종에서 유전자를 물려받은 잡종들이 퍼져나가게 된다. 또한 잡종이 원래의 종 중 하나와 교미할 경우, 다른 종의 유전자를 옮기게 된다. (예를 들어 A, B 두 종의 잡종이 다시 A 종과 교미를 할 경우 B 종의 유전자가 잡종을 거쳐 A 종에게 전달된다) 식물의 이종교배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동물의 경우도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참고로 현생 인류 유전체의 2~3% 정도는 네안데르탈인과의 이종교배를 통해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내가 읽을 때는 이 책이 절판된 상태여서 중고로 구해 읽었는데, 얼마 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20주년 기념판이 번역되어 나왔다.) 




  1. 예전에는 ‘하등 생물’이라는 말을 썼지만, 고등/하등의 구분은 자의적이고 인간중심적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이러한 말은 더이상 쓰지 않는다. 대신 생물 종에 따라 구조의 복잡성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단순한/복잡한 생물(simple/complex organism)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본문으로]
  2. 책 내용과 관계가 없으니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겠지만, 애초에 돌연변이라는 것 자체가 기존의 유전체에 없는 정보가 추가된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어서 이 문장은 모순이다. 이 칼럼 쓴 놈은 이성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에 틀림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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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