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치가 집권하던 당시의 독일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이다. 유대인들이 탄압받는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기보다는 두 소년을 둘러싼 사건들을 통해 그 당시의 분위기를 전달한다. 나치즘, 홀로코스트를 직접적으로 그려냈다기보다는 그 시대의 풍경을 그려낸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사실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하는 매체는 차고도 넘친다. 내가 본/읽은 것만 해도 영화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피아니스트>, <사울의 아들>, 만화 <쥐> 등이 생각난다. 그밖에도 수많은 문학작품, 논픽션, 영화, 다큐멘터리 등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많은 홀로코스트 관련 매체들을 두고 굳이 이 소설을 읽을 이유가 있는가?

이 소설이 특별한 점은 두 소년의 우정이 이 소설의 중심 축을 이룬다는 것이다. 역사적 사건은 너무나 거대해서 개개인과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개개인의, 어쩌면 사소해보일 수도 있는 행동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주인공의 친구는 나치즘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은 것은 주인공과의 우정 때문이었다. 나치즘 같은 무시무시하고 잔혹한 이념이 우정이라는 소소한 감정으로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처럼, 억압하는 사람들과 억압당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을 자주 마주대했다면 역사의 수많은 비극들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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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1. 글을 쓰며 맞춤법을 고민하다가 문득 든 생각. 우리는 맞춤법이 어렵다고 불평하지만, 맞춤법을 언제 한 번 제대로 공부한 적이나 있나?

2. 시간의 흐름을 의힉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흘러갔다는 점만 의식하는 것 아닐까?

3. 너무나 당연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던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문제인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4. 인식할 수 있는 존재자가 없는 세계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철학적 입장이 있다. 이를 믿는 사람들에게 '의미'는 '존재'의 필요충분조건인 것일까? 

5. 밤에 그림자를 보고 큰 새가 날아갔다고 생각했는데 가로등 주위를 맴돌던 나방일 뿐이었다.

6. 추억을 함께한 사람에 대한 애정을 잃어버리면 그 추억은 평범한 기억으로 전락한다. 

7. 무언가를 잃었을 때의 상실감은 그것을 가지고 있었을 때의 효용보다 크다. 박탈감이라는 요소가 더해지기 때문이다.

8.자기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남에게 큰 고통을 주는 행동이 있다. 여기까지는 고의가 아니므로 용서받을만 한데, 상대방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인지하면 그 행동을 그만두어야 한다.

9. 실질적인 도움이 아닌 응원은 그저 희망고문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10. 페이스북의 생일 축하는 대개 진정성이 없다.

11. 우리나라 역사는 '자랑스러운' 역사인가? 역사 교과서는 국수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것 같다.

12. 무언가 의미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항상 고통스럽다.

13. 나는 '특기'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는 것 같다. 

14. 많은 사람들이 자기 취미가 '음악 감상'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음악은 다들 좋아하고, 누구나 어느 정도는 듣는다. 음악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취미일 것이다. 그렇다면 취미가 음악이라는 말은 정말 음악 매니아인 경우를 제외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15. 내 이야기를 굳이 다른 사람이 읽게 할 이유가 있을까?

16. 태어날 때부터 완전히 혼자서 자라서 다른 사람의 존재를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외로움을 느낄까? 이 질문은 내가 오래 전부터 고민해온 것이다. 내가 내린 결론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외로움은 애착의 반동으로 생기는 것이다.

17. 나는 대체가능하다. 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아도 세상은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것이다.

18.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일은 악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이런 생각에는 논리적인 근거가 없다. 당위적인 명제와 감정을 고양시키는 말들('감성팔이')에만 기반을 두고 있을 뿐이다. 

19. 하찮은 것 하나하나에 신경쓰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것 하나하나가 모여서 전체를 만든다. 

20.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자신의 두려움, 절망, 비관주의, 허무함, 좌절의 원인을 직시해야 한다. 다른 일 탓으로 돌리면 안된다. 자기가 느끼는 것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우회하려고 하면 또다른 장애물을 만날 뿐이다.

21. 영화는 대개 다시 보면 재미가 없다. 반면 대부분의 음악은 여러 번 들어서 어느 정도 귀에 익어야 좋아진다.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22. 능력이 있는 사람은 사회적으로 성공한다. 하지만 그 능력이 타고난 재능에서 온 것이라면, 그 사람은 운이 좋았을 뿐이다. 

23. 사람들은 먼저 판단하고 그 후에 근거를 덧붙인다. 특히 정치에 대한 의견에서 그렇다.

24. 인간의 감정은 심하게 요동치는 불안정한 것이다. 이성으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25. 아무리 가까웠던 사람이라도 한순간에 아무 의미 없는 사람이 될 수 있다.

26. 위대한 인물들이 겪었던 실패를 나열하면서, 그런 실패는 당연하고 이겨내야 할 과정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그 위대한 인물들의 실패 사이사이에 있었던 성공들을 비롯해 실패를 이겨낼 수 있게 만들어준 다른 요인들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그런 요인이 없는 사람이 작은 실패에 좌절하면 온갖 비난을 다 해댄다.

27. 성공한 사람들의 인생, 진로에 대한 강연을 들어보면 많이 나오는 말들이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전했다든지, 무엇을 하든 길은 있다든지 하는 말들이다. 하지만 그 말들은 그들이 성공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다.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들어봐야 할 것이다.

28. 무언가 엄청나게 즐거운 일을 하고 싶다. 모세혈관 하나하나에 스며드는 일 말이다. 하지만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29. 서로의 신념이 '완전히' 대립될 경우 만족스러운 합일점을 찾아내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정치, 종교 가지고 논쟁을 하지 말라는 것은 이 때문이다.

30. 감정이란 순간적으로 요동치는 것이어서, 죽을 만큼 절망에 빠져 있다가도 사소한 일 하나로 즐거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즐거움에는 다시 절망에 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섞이기 마련이다.

31. 아무리 친밀한 사이여도 한 번 어긋나면 그 틈은 점점 벌어진다. 틈이 작을 때 빨리 해결해야 한다. 억울하고 부당하다고 생각해도 일단 사과하고 나중에 해결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32. 감정적으로 흥분한 사람에게 그대로 맞서면 안된다. 일단 그 폭풍을 가라앉힌 다음에 생각해야 옳다. 이성을 잃은 사람이 이성적으로 생각하길 바라는 것보다 비이성적인 것은 없다.

33. 읽은 책에 대한 글을 쓰다 보면 내가 그 책에서 얼마나 적은 부분만을 이해하고 있는지 알게 된다.

34. 많은 사람들이 자연주의적 오류에 빠져 있다. 또는 특정 과학 이론의 반대자들이 그 이론에 자연주의를 자의적으로 덧씌운 뒤 비난하는 일도 잦다. 유전자 결정론이 사실이라고 해서 그것이 차별, 범죄, 특정 이데올로기 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사실대로 받아들여야 하고, 가치 판단은 가치 판단대로 따로 해야 한다.

35. 다른 사람들이 다들 좋아하는 일을 나도 좋아했으면 좋겠다. 

36. 심심한건지 공허한건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심심하다면 재미있는 게임 몇 판 하면 되겠지만 공허한데 그런 일로 해결하려고 하면 시간낭비일 뿐이다. 내가 그랬다.

37. 뭐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어떨까? 마음 내키는 대로 했을 경우와 절제했을 경우를 비교해서 더 좋은 쪽을 따르면 될 것이다. 문제는 마음 내키는 대로 하면 돈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38. 동해 표기도 이기적인 것 아닌가? 일본 입장에서는 자기네 땅 서쪽에 있는 바다를 동해라고 표기하는게 당연히 못마땅할 것이다. 그리고 동해 또는 한국해는 그냥 옛날에 통용되던 명칭일뿐 공식적인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매국노라고 비난받겠지? 하지만 나는 애국자가 되기보다는 코스모폴리탄이 되고 싶다.

39. 어떤 능력이 다른 능력을 통해 평가되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자기소개서, 면접은 작문실력, 화술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40. 인간의 본질은 정해져있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가야되는 거라면, 인류 전체의 본질도 정해져 있지 않고 인류 스스로가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41. 지금의 일본인들은 조선을 강탈한 자들이 아니다. 그들에게는 잘못이 없다. 하지만 이것은 '지금의 일본인들'이 잘못이 없다는 것일 뿐, 일본이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때의 일본인과 지금의 일본인은 다르지만, 그때의 일본은 지금의 일본이다. 5살때의 내가 21살의 나인 것과 마찬가지다.

42. 5살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나'인가? 내 몸을 이루고 있던 분자들은 모두 달라졌을텐데? 이런 문제에 마주치면 결국 형이상학적 도구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문제를 우회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지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43. 현재 민주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하지만 과거에는 군주제에 반대하는 것이 말도 안됐다. 훗날 완전히 새로운 정치체제가 등장한다면 우리가 군주제를 비웃는 것처럼 그때에는 민주주의를 비웃을까?

44. 세상은 사실 무채색이다. 그래도 우리는 색깔을 본다.

45. 책은 장식용이기도 하다. 그렇지 않으면 다 똑같이 만들었겠지. 아니, 다 다르게 만들어서 장식용이 된건가?

46. 스티브 잡스가 기술과 인문학을 융합했다 어쩌고 떠들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했다는 설명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나마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인문학이라기보다는 인간공학에 가까워 보인다.

47. 이쪽에서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널려 있고, 저쪽에서도 나보다 뛰어난 사람들이 널려 있다. 슬프다.

48. 익숙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일은 언제나 아쉬움을 남긴다. 두 생활 사이에 언제나 간극이 있기 때문이겠지.

49. '합리적'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어질 수 있는지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한참동안이나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 수 없었고 죄송스러움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경험이었다.

50. 취향을 무조건 존중해줄 필요는 없다. 취향은 그 사람의 안목을 드러내기도 한다.

51. 삶이 총체적으로 잘못되어 있다는 생각이 때가 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문제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52. 말로 표현할 없는 어떤 깊은 감정을 느껐다. 기대에 부흥하가 위해 감동받은 표정을 지었지만 사실은 오히려 무표정으로 있고 싶었다.

53. 나는 '뭔가', '왠지', '어떤' 같은 모호한 표현들을 즐겨 쓴다. 어휘력이 부족하다기보다는, 내 느낌을 정확하게 표현할 어휘가 없기 때문이다.

54. 참는 것과 용서하는 것은 조금 다른 것 같다.

55. 진실을 알려줬더니 의지할 곳이 없어졌다고 화를 내는 사람.

56. 콜라를 기품있게 마시는 법이 있을까?

57. 성숙해진다는 것은 점점 많은 것을 포기할 알게 된다는 것이다.

58. 유로파의 바다를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59. 편의점에서 라면 데우고 있는데 밖에서 차 사고가 난다면, 나는 그 모습을 보러 갈 것인가, 아니면 비위가 상하지 않고 라면을 먹고 싶어서 무시할 것인가.

60. 늙기 전에 죽고 싶다는 노래 가사에 감동하던 때도 있었고, 죽기 위해 늙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때도 있었다.

61. 외로움은 주변에 사람이 적어서가 아니라 원하는 사람이 없어서 생긴다.

62. 우울은 중독성이 있다. 다른 생각을 하면 어느 정도 벗어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 우울함에 빠져 있고 싶어한다.

63. 스위치 꺼지듯 잠들 있었으면 좋겠다

64. 계속 깜박이던 전등 불이 완전히 나가버렸다. 이제 전등까지도 나를 무시하나 싶어 기분이 나빠졌다.

65. 생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그래도 다른 날들과는 다르게 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문제는 그런 기대 때문에 훨씬 우울해진다.

66. 일반적으로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보다 정중한 표현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자어가 고유어보다 격식 있는 표현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 말고도 '고맙습니다' 반말로 '고마워'라고 있는데 '감사합니다' 반말 형태가 없다는 점도 한몫 하지 않을까 한다.

67. 기계와 생체의 결합에서 느껴지는 그로테스크함은 물활론의 잔재가 아닐까

68. 어떤 사람의 주장에 대해, 그것이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비판하면  내용이 아무리 옳더라도 무언가 잘못된 것처럼 보이게 만들 있다.

69. 감정을 발명할 수 있을까?

70. 
: 빨리 AI 발전해서 사람들이 하고 있게 됐으면 좋겠다.
친구G: 그렇게 되면 문화나 엔터테인먼트 창작자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겠네

71.
동생: 게임 정품 산다고 좋은 것도 없잖아.
: 가게에서 과자 훔쳐먹어도 맛은 똑같잖아.

72. 외로워서 우울해지는 경우는 있어도 우울해서 외로워지는 경우는 없다. 싫어서 화가 나는 경우는 있어도 화가 먼저 나고 싫어지는 경우는 없다. 이런 보면 감정들 사이에 순서나 위계가 있는 같다.

73. 우울하면서도 기분이 좋다. 이상한 이야기지만 정말로 그렇다. 그래도 역시 우울한건 성가시다.

74. 사람들은 나쁜 사람을 강하게 욕할수록 자신이 도덕적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하는 같다

75. 목표가 없으면 무엇을 해도 공허하다.

76. 어떤 사람은 카드 뉴스가 효율적인 방법이고, 기존 형식과 다를 부정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각은 다르다. 카드 뉴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짧고 쉬운' 콘텐츠들이 많아지고 있다.

77. 냉장고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계속 열어보게 된다.

78. 예술 작품 감상에 정답은 없다? 맞는 말이다. 정답은 없다. 그런데 오답은 있다.

79.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작품'이라는 평가. 그래서 그 많은 생각은 다 어디 갔을까? 많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작품이라고 평하면서, 딱 거기에 그쳐버린 것은 아닐까?

80. '이유'에는 이성적인 이유와 감정적인 이유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자만을 합당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81. 페이스북에 길고 진지한 글을 쓰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래서 길고 진지하기만 하면 바보같은 내용의 글이어도 사람들이 떠받들어준다.

82. 읽는 자체가 숭고한 일인 마냥 목적도 없이 무턱대고 읽지는 않을 생각이다좋은 책을 읽는 행위는 좋은 것인가? 아니다. 책은 좋아도 책을 읽는 행위에 목적이 없으면 무의미하다.

83. 한국의 도시들에 활기는 존재하지만 활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취기에서 나온 활기와, 활력에서 나온 활기.

84. ‘소나기동백꽃 무렵같은 소설을 지금 같은 시대에 쓰는 사람이 있다면, 사람은 멍청이겠지

85. 가끔 우리나라에 대해 비판하면 국가가 너한테 이만큼 주니까 고마운 알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논리 펼치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국가는 봉사기관이 절대 아니다. 개인이 사회, 경제 활동을 하는 자체가 국가에 5천만 분의 1 역할을 주는 것이다. 국가는 그에 대해서 5천만 분의 1 보답을 주는 거고개개인이 국가에게 해주는 것과 국가가 개개인에게 해주는 것은 등가교환이다. 정확히 말한다면 '등가교환이어야 한다'. 거기서 몫을 받지 못한다면 결손분에 대해 요구하는게 당연하다따라서 애국심은 가져도 되고 가져도 된다. 가게에서 물건을 가게 주인에게 친근감을 느껴도 되고 느껴도 되는 것과 마찬가지다

86. 피장파장의 오류는 논리적 측면에서 보면 분명 오류지만, 현실적으로는 마냥 오류로 취급하기는 무리가 있다.

87. 단순히 재미 없다는것만이라면 의지만으로 극복할 있다. 하지만 내가 이걸 하고 있어야 하는지에, 그리고 심지어 그걸 넘어서 '무언가' 해야 하는지에 의문을 품으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

88. 나는 더 강한 마음을 가지기에는 오만함이 부족했다.

89.  친구에게 내가, 그리고 내가 친구에게 필연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 서운했다. 친구 개인에게가 아니라  세계에게 서운했다. 필연성이라고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게 서운했다

90. 잔디밭을 만들어놓고서 들어가게 하는게 자연'친화'적인건가? 그냥 겉모습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놓은 것에 불과하지 않나잔디밭에 들어가면 잔디가 손상되니까 그렇다면... 그저 보기 위해 손상되는 식물을 심어놓고 들어가지 말라고 하는게 옳은 건가? 사람 발에 밟혀도 자라는 풀들은 '잡초'라며 없애버려놓고.

91. 누구나 사소한 결정 하나하나에도 고민한다. 그런데 누구나 그러는 것을 가지고 '결정장애'라는, 의학 용어처럼 보이는 그럴 듯한 말 하나를 붙여서 장애 취급한다.

92. 밥을 하루에 먹어야 한다는 것도 이데올로기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93. 자기관리라는 말은 상당히 폭력적으로 쓰일 때가 많다.

94. 자기 좌우명이 '현재를 즐겨라!', '카르페 디엠'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 정말 쓸데없는 좌우명이다. 현재가 즐길만 하면 그런 좌우명을 되새기지 않아도 그냥 즐기면서 산다. 반면에 현재를 즐길 만한 여건이 되는 사람은 저런 소리 되새겨봤자 비참해지기만 한다. 매일매일 엿같은 일밖에 없는 사람한테 현재를 즐기라고 해봤자 즐길게 없거든.

95. '가끔 문화 생활도 해야 '라는 담론. 뭣하러?

96. 소장가치라는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보석같은 것, 말하자면 쓸데는 없지만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 좋은 . 그런 건가?

97.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아니라는 다들 뻔히 알고 있을 텐데. 이런 말로 현실을 외면한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98. 국어 파괴 어쩌구저쩌구 하면 '세종대왕이 슬퍼하실거다'하는 말이 상투적으로 나오는데, 세종이 만든 국어가 아니라 한글이니 국어 파괴랑 세종이랑 상관 없는 ?

99. 북유럽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혈당이 높다. 이는 추운 기후에 대한 적응의 결과이다. 하지만 현대에는 난방이 발달했기 때문에 높은 혈당이 도움이 되기는커녕 당뇨병 발병률만 높이고 있다. 우리가 관습 혹은 전통이라고 부르는 것들 중에도 이런 것들이 있다. 과거에는 필요했지만, 사회가 바뀌면서 오히려 해가 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은 '미풍양속'이니 '뿌리깊은 전통'이니 하는 말로 미화하지 말고 뽑아버려야 한다.

100. 긍정이라는 말은그 자체로 긍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부정이라는 말은 자체로 부정적인 뉘앙스를 띤다.  문제를 극복할 방법이 없을까?

101. 사람들이 신체적인 나약함에 대해서 비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정신적인 나약함에 대해서는 완전히 반대다. 체력이 약하다고 해서 비난받지는 않지만, 소위 말하는 '멘탈붕괴' 쉽게 하면 비난받는다물론 정신적인 나약함은 측정이 어렵다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정신적인 나약함에 대한 비난은 너무 혹독하다.

102. 역사 관련 책에서 무언가 가정을 때면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그래도 생각해본다면~' 이런 말을 붙인다. 가정을  보는게 부끄러운 일이고 죄책감을 가져야 일인 듯이 말이다. 무언가를 가정하는 일을 통해 실제 역사를 이해할 수도 있을 텐데 말이다.

103. 돈에 대한 집착을 버리려면 일단 돈이 있어야 한다.

104.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멍청한 사람들이 있다. 생각을 안 해서 그렇다.

105. 비도덕적으로 생각되어 양심에 찔리거나 '왠지' 꺼려지는 일들이, 따져보면 딱히 비도덕적이라고 만한 근거가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 양심에 찔리거나 '왠지' 꺼려진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을 제한해야  충분한 이유가 되는 걸까

106. 종교와 과학의 대화니 뭐니 하는 글들은 결론이 죄다 뻔하다. '종교도 필요하고 과학도 필요하니 서로서로 사이좋게 지내자'. 이런 소리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그런 결론이 가치있고 생산적이라는 생각을 하겠지만 눈에는 위선으로밖에 보인다.

107. '생활의 지혜' 하나. 조금 더러워 보이더라도, 빨래  양말 켤레 정도는 빨지 말고 놔둬야 한다.

108. "IQ만으로 모든 평가할 없다. EQ, MQ 등등도 모두 중요하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래도 IQ 높으면 좋지 뭐.

109. 획일적이라는 비판  자체도 획일적인 경우가 많다. 특히, '획일적 교육'에 대한 비판들은 획일적이다.

110. 사람들은 '동양 사상'이라고 하면 ' 성현의 지혜' '고상한 정신적 가치' 하는, 말하자면 '동양의 신비'같은 이미지를 떠올리는 같다. 사람들이 고민해온 주제들은 동양이나 서양이나 크게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111. 경계가 모호하다고 해서 나눌 없는 아니다. 빨주노초파남보의 경계는 모호하지만,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각각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경계가 모호하다는 이유로 이상의 고찰이나 논의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는 모호하기 때문에 둘을 나누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식이다. 논쟁 중에 상대가 이런 논리를 들고 나오면 짜증난다.

112. 거시적이고 추상적인 것에 대한 비판보다는 세부적인 것에 대한 비판이 더 건설적인 경우가 많다.

113. 사람들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 필연적이지 않다는 점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가장 소중한 관계조차도 가장 하찮은 우연에서 생겨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안타깝고 괴롭다. - 세상은 무채색이다.

114. 철학은 상식의 검증을 받아야 하는가? 상식이 사실은 '상식'이 아니었음을 보이는 것이 철학의 본질 아닌가?

115. 스티븐 제이 굴드는 인간의 가치 체계가 자연의 가치 체계와 무관하기 때문에 오히려 제약 없이 풍부해질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은 과학의 가치중립성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 않을까?

116. 인간관계에서의 합리란,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도 고려하는 것이다.

117.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들을 기회가 없다.

118. 완전한 상태로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는 없다. 약간의 포기가 필요하다.

119. 일본 문화 전반을 천박한 것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정신승리에 불과하다.

120. 심심한 것과 공허한 것, 외로운 것, 우울한 것은 자주 혼동된다.

121. 선물을 받아본 적이 거의 없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에게 준 적이 거의 없어서겠지.

122. 누군가를 좋아해서 정말 좋았던 적은 없는 것 같다.

123. '단어의 의미'라고 할 때의 '의미'와 '삶의 의미'라고 할 때의 '의미'는 같은 의미인가?

124. 겉으로는 살갑지만 속으로는 사람들을 냉정하게 판단하는 사람. 이런 부류는 조금 섬뜩하다.

125. 프로파간다도 극에 달하면 예술이 된다는 하나의 예. 고바야시 다키지.

126. 적절한 배경이 없다. 무언가를 표현하려면 적절한 배경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제목을 '서울, 1964년 여름'이라고 바꾸면 쓸쓸한 분위기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다.

127. 권위에 의존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권위자의 의견을 비판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권위에 의존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 GMO를 옹호하는 노벨상 수상자 100여명의 서명은 보도하지 않으면서 '일개' 요리사의 GMO 반대 칼럼을 실어주는 신문.

128. 모순되는 감정을 부정하지 말 것. 어차피 다른 사람들은 내 내면을 들여다보지 못한다. 억지로 부정하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일이다. 만약 내 감정이 비도덕적인 것이라면,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어떻게 해야 할 지 고민해보면 된다.

129. 한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말과 고구려의 정복 전쟁을 찬양하는 내용이 같은 책에서 나오는 아이러니.

130. 명백하게 답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문제에도 사람들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음을 알았다. 답이 정해져 있다고 속단하지 말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야 한다.

131. 나는 내가 검소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구질구질해 보일 뿐이었다.

132.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은 정말 어렵다.' 이 문장은 너무 뻔한 말을 하는 것 같아 보인다. 하지만 이 문장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이 문장이 진부하게 느껴져서 아무 감흥이 없다면, 다음과 같이 바꿔 읽는 것도 좋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일은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정말 어렵다.'

133. 픽션의 분위기를 진중하게 만드는 쉬운 방법은 종교적 알레고리를 넣는 것이다. 별 대단치 않은 이야기에도 종교 이야기가 슬쩍 끼어 있으면 왠지 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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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이루어진, 진화생물학자 피터 그랜트/로즈메리 그랜트 부부의 현장 연구를 소개한 논픽션이다. 그랜트 부부는 갈라파고스 제도의 몇몇 섬에 서식하는 수백~수천 마리의 새들에게 하나하나 표지를 달고 부리 길이와 체중 등을 측정하는 연구를 오랜 시간에 걸쳐 해왔다. 이 연구를 통해 그들은 복잡한 생물에게 일어나는 진화를 직접 관찰하고 정량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진화가 바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음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진화는 오랜 기간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가 실제로 관찰할 수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며, 다윈 역시도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항생제를 남용하면 내성을 가진 박테리아가 생긴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건 박테리아가 단순한 생물[각주:1]이기 때문이고, 복잡한 생물의 경우 그런 변화가 빠르게 일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복잡한 생물에서도 우리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일어나는 진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랜트 부부가 연구를 하고 있던 섬 데프니 메이저에는 1977년에 큰 가뭄이 들었다. 그랜트 부부는 이 가뭄 전후에 포르티스라는 새의 부리 길이를 측정했다. 가뭄 전 이 새들의 평균 부리 길이는 10.68 mm이었는데, 가뭄 이후에는 11.07 mm로 약 1.4 mm의 변화가 있었다. 불과 몇 년 사이를 두고 현격한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1.4 mm가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변화지만, 이 새들에게는 10%가 넘는 변화다.) 이 가뭄 때문에 작고 부드러운 씨들이 적어지고 크고 딱딱한 씨들만 남자 크고 딱딱한 씨들을 깰 수 있는 큰 부리를 가진 새들이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뭄 한 번으로 새들의 모습이 이렇게 빨리 변화하는데 왜 새로운 종들이 빠르게 생겨나지 않을까한쪽 방향으로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으면반대 방향으로의 변화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년 후에 이 섬에는 홍수가 났는데, 이 홍수로 인해 작고 부드러운 씨들의 비율이 늘어났다. 몸집이 작아 별로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은, 작은 부리를 가진 새들이 생존에 훨씬 유리해진 것이다. ‘진화는 종을 한 방향으로 빠르게 밀어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진화는 방향을 바꿔 그것을 똑같이 뒤로 빠르게 밀 수도 있다.’(151)

여기서, 진화가 계속 방향을 바꿔서 일어난다면 계속되는 진동만 있을 뿐 실질적인 진화는 불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겠다. 가끔 심심풀이로 창조과학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는데, 여기에도 진화가 이쪽 방향으로도, 저쪽 방향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는 설명은 아무 의미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논지의 칼럼이 있었다. (<리뷰> 앞으로도, 뒤로도, 옆으로도 나아가는 진화. : 진핵생물이 진화하여 원핵생물이 되었다?) 이 칼럼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단순히 진화가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고만 설명하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진화론은 진화가 일어나게 되는 원리(자연선택)까지 설명하고 있다. 만약 환경의 변화로 인해 진화가 한 쪽으로 일어나도록 압력이 가해진다면(예를 들면 가뭄이 매우 오래 지속되는 것 같이) 실질적인진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충분히 의미있는 설명을 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과학회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 책의 내용과 관련 있는 또 다른 (멍청한) 칼럼 하나를 보자(코끼리들은 밀렵 때문에 더 작은 엄니로 진화했는가?) 이 칼럼에서는 종 내에서 약간의 변화는 일어날 수 없어도 새로운 종이 만들어지는 변화는 일어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이 칼럼에서는 그 이유를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은 유전체에 새로운 정보를 추가시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각주:2]

하지만 자칭 창조'과학'자들의 망상과는 달리 유전체에 새로운 유전 정보가 추가되는 메커니즘이 여러 가지 존재한다. 이 책에는 그 중 한 가지가 소개되어 있는데, 바로 잡종이다. 많은 경우 잡종들은 자연선택에 의해 제거되지만, 환경의 변화 등으로 인해 원래의 종들보다 생존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이 경우 두 종에서 유전자를 물려받은 잡종들이 퍼져나가게 된다. 또한 잡종이 원래의 종 중 하나와 교미할 경우, 다른 종의 유전자를 옮기게 된다. (예를 들어 A, B 두 종의 잡종이 다시 A 종과 교미를 할 경우 B 종의 유전자가 잡종을 거쳐 A 종에게 전달된다) 식물의 이종교배가 어렵지 않게 이루어진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는데, 동물의 경우도 생각보다 흔하게 일어난다고 한다. (참고로 현생 인류 유전체의 2~3% 정도는 네안데르탈인과의 이종교배를 통해 네안데르탈인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다.)


(내가 읽을 때는 이 책이 절판된 상태여서 중고로 구해 읽었는데, 얼마 전에 다른 출판사에서 20주년 기념판이 번역되어 나왔다.) 




  1. 예전에는 ‘하등 생물’이라는 말을 썼지만, 고등/하등의 구분은 자의적이고 인간중심적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이러한 말은 더이상 쓰지 않는다. 대신 생물 종에 따라 구조의 복잡성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므로 단순한/복잡한 생물(simple/complex organism)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본문으로]
  2. 책 내용과 관계가 없으니 간단하게 언급하고 넘어가겠지만, 애초에 돌연변이라는 것 자체가 기존의 유전체에 없는 정보가 추가된 것을 포함하는 개념이어서 이 문장은 모순이다. 이 칼럼 쓴 놈은 이성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에 틀림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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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1. 원숭이가 인간에게 웃음거리인 것처럼 인간은 위버멘쉬에게 웃음거리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데이빗이 인간을 비웃는 이유.

2.신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카라마조프 형제들> 
엔지니어가 사라졌을 때 인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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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왓챠에 쓴 글 옮김.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짤막하게 남기겠다. 중동의 시가지에서 벌어지는 현대전의 모습이 생생하게 묘사되었고 특히 주인공이 PTSD에 시달리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 깊었다. 개인적으로도 경주 대지진 때문에 약하게나마 PTSD를 겪은 적이 있다. 물론 그 정도는 주인공이 겪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적어도 PTSD가 어떤 느낌인지는 이해하며, 영화에서 그 느낌을 탁월하게 묘사해냈다고 생각한다. 다만 주인공이 테러 뉴스 하나 보더니 군에 지원하는데, 심리 묘사가 거의 없어 영 부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또, 적을 저격하는 모습이나 모래 바람 속에서 탈출하는 장면 등은 연출이 약해 영 긴장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리하면, 그럭저럭 볼 만 하지만 썩 훌륭하진 않은 영화 정도 되겠다. (스나이퍼? 우와, 왠지 멋있어 보여! 재미있을 것 같아! 하는 생각으로 이 영화를 골랐으면 이 영화보다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를 추천한다.)


영화 자체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이다. 주인공이 PTSD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무너져 내리고, 아내와의 관계가 악화되는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장면들은 반전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듯하다. 저격수의 인간적인 고뇌를 조명한 장면들도 인상 깊다. 하지만 동시에 이 영화는 선악의 이분법과 이라크인들에 대한 증오를 바탕에 깔고 있는,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영화라는 비판이 있었다. 나는 여기에 동의하며, 이 글에서는 영화 자체보다는 이러한 비판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

이 영화에 담긴 정치적 문제들을 간과하는 사람들은 감독이 이전에 훌륭한 반전 영화들을 만들어냈으므로 이 영화도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감독의 예전 영화를 언급하며 이 영화를 옹호하려면, 바로 그 감독이 이 영화에서는 실제 크리스 카일의 부도덕한 언행을 숨기고 미화했다는 점에 대해서 해명을 해야 할 것이다. 영화 속에서 크리스 카일은 대전차 수류탄을 들고 있는 여성과 아이를 쏘아야 할 지 고뇌하고, RPG를 주워 드는 어린아이를 쏘지 않아도 되기를 간절히 비는,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사람이다. 반면 실제 크리스 카일은 조금 달랐다. 그는 자서전에 이렇게 썼다. ‘내가 죽인 사람들은 모두 나쁜 자들이었다. 내가 신 앞에 섰을 때 해명해야 할 일들은 많지만, 그들을 죽인 것은 해당되지 않는다’, ‘사람을 쏘는 것이 재미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또한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예술 작품들도 마찬가지지만)에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는 서브텍스트가 숨어있다. 영화의 직접적인 메시지와 관객들이 수용하는 메시지는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 훌륭한 반전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작품이고, 표면적으로 반전을 표방하고 있는 듯한데도 무언가 꺼림직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면, 이러한 서브텍스트를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표면적인 메시지만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람직한 영화 감상 태도가 아니다.


영화가 이라크인들을 묘사하는 방식은 부시가 이들을 ‘악의 축’으로 표현한 것과 다르지 않다. 단순하고 맹목적이라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 이라크인들은 하나같이 미군에게 적대적이며 인간적인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로 묘사된다. 대전차 수류탄을 들고 있던 여성과 아들, 식사를 대접하는 척 하며 미군을 ‘도살자’에게 넘기려던 집주인, 소년을 드릴로 잔인하게 살해하는 ‘도살자’ 등, 이 영화에 나타난 이라크인들은 하나같이 미군에게 위협적인 존재다. 따라서 이들을 사살하는 일은 정당하며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는 행위로 느껴지게 한다. 절대다수의 이라크 국민들은 억울하게 전쟁에 휘말린 피해자들이라는 점은 나타나있지 않다.

지금까지 언급한 사람들은 정말로 미군에게 위협이 됐던 존재니 부정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반론이 나올 수 있겠다. 하지만 미군이 ‘도살자’를 사살한 뒤에 어떤 장면이 나왔는지 다시 생각해보자. 평범한 동네 주민들이 모여 미군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이는 반대로 생각하면 이 영화가 담고 있는 미국인들의 평범한 이라크인들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또한 이 장면은 미군이 도와줘서 고마워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알 수 없는 언어로 목청을 높이며 화를 내는데, 이로 인해 이들은 비이성적이고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로 보이게 된다. 물론 미군에게 협조적인 이라크인이 하나 등장하긴 한다. 초반에 ‘도살자’에 대한 정보를 넘겼다가 아들과 함께 살해당한 사람 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정보를 넘겨주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요구하는 속물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영화 내에서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묘사된 이라크인은 단 한 명도 없다.

그 중 가장 압권은 물론 무스타파다. 일종의 ‘보스’ 역할을 하는 무스타파는 첫 등장부터 죽을 때까지 입은 굳게 다물고 눈빛만 번뜩이고 있다. 그는 미군을 죽이면서도 표정 변화가 없다. 얼굴은 사람의 신체부위 중에서 가장 인간적인 면이 드러나는 곳이다. 표정 변화가 없는 등장인물은, 인간이라기보다는 다른 존재, 소통이 불가능하며 단지 토벌되어야 할 타자, ‘악’ 그 자체가 된다.

(잡담 하나. ‘표정’과 관련해서 <블랙 호크 다운>을 잠시 언급하고 싶다. 이 영화 역시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다는 평과 정치적으로 부적절하다는 평을 동시에 받는 영화이다. 나는 <블랙 호크 다운>을 무척 좋아하며 전쟁영화의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평에도 동의한다. 물론 이 영화는 표면적으로는 반전 영화를 표방하긴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꼼꼼이 보면, 소말리아인 개개인의 표정이 명확히 보이는 장면이 하나도 없다. 미군의 경우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표정을 클로즈업하고 슬로우 모션으로 잡는 등, 표정을 부각시킨 장면이 많다. 반면 소말리아인들이 나오는 장면들의 경우 역광이나 흙먼지로 인해 표정 식별이 힘들다.)

무스타파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장면이 하나 나온다. 무스타파가 자신의 집에서 아내로 추정되는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다. 그의 가족을 보여줌으로써 그 동안 비인간적으로만 묘사한 것에 대해 균형을 맞추고자 한 것 같은데, 감독의 의도가 뻔히 보여서 실소만 나오는 장면이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악역으로만 나오면 정치적으로 부적절한 것 같네? 뭔가 좀 인간적인 장면을 넣긴 해야 될 텐데… 스토리를 따로 만드는 건 좀 귀찮기도 하고 줄거리가 산만해질 것 같은데 어떻게 할까? 음, 그냥 가족 나오는 장면 몇 초 정도 넣고 말자.’ 이런 사고과정이 뻔히 보인다고나 할까. 미국의 창작물에는 인종차별 논란을 피하기 위해 억지로 등장시키는 개성 없는 흑인 캐릭터가 흔히 등장하는데, 이러한 캐릭터를 ‘토큰 블랙’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 장면은 ‘토큰 이라크’ 정도로 불러주면 적당하지 않을까?


또 한 가지, 이 영화가 다루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 영화의 배경은 이라크 전쟁이지만, 영화 내에서 이라크 전쟁이라는 맥락은 완전히 지워져 있다. 배경이 이라크전이 아니라 걸프전이나 2차 대전으로 바뀌었어도 이 영화의 내용은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들 알다시피, 이라크 전쟁은 헛된 명분을 내세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전쟁이었다. 이러한 커다란 역사적 맥락에 대한 철저한 외면이,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는 없다. 오히려 크리스 카일을 영웅으로 묘사하기 위해 ‘어리석은 전쟁’이라는 맥락을 배제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어리석은 전쟁에서의 영웅은 진짜 영웅이 될 수 없으니까 말이다.

(잡담 둘. 이 영화와 마찬가지로 이라크 전쟁이 배경인 <허트 로커> 역시 철저하게 개인에게 초점을 맞춘 영화이다. 다만 <허트 로커>에는 적대적인 이라크인뿐만 아니라 반군에 의해 억울하게 희생된 일반인의 모습도 보여준다.)


다시 말하지만 <아메리칸 스나이퍼>는 꽤 볼만한 영화다. 하지만 감상하면서 영화의 이면에 담긴 정치적인 함의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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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1쪽 분량의 서평 과제로 낸 글.


한국인이면 누구나 위안부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얼마나 참혹한 일을 당했는지 잘 모른다. 또한 피해자들이 돌아온 이후에도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았고, 수십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그 기억에 괴로워하고 있다는 것을 잘 모른다. 이 소설은 위안부 피해자들이 겪었고 지금도 겪고 있는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줌으로써 그들에게 무관심했던 우리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소설의 주인공인 그녀는 공개적으로 밝힌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만 남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사실은 그녀도 열세 살 때 위안부로 끌려간 피해자이지만 신고를 하지 않고 평생을 살아왔다. 일본이 패망할 무렵 위안소에서 탈출한 그녀는 결국 고향으로 돌아갔지만, ‘창피스러워서, 너무 부끄러워서,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31) 아무에게도 자신이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다. 마지막 한 명의 피해자도 위독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녀는 그 한 명을 만나러 간다.

이 소설의 두드러진 특징은 많은 구절들을 실제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에서 인용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이 소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에 기초한 만큼, 소설적 상상력보다는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이 소설에서 묘사되는 위안소의 모습은 너무나 끔찍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지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어김없이 붙어있는 각주 표시는 이런 믿기지 않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음을 실감하게 한다.

또한 이 소설은 그녀의 위안소에서의 기억과 현재의 삶을 교차해서 서술함으로써, 위안소에서의 악몽이 아직까지도 그녀를 지배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가 위안소에서 탈출한 지 70년이 넘었지만 그녀는 아직까지도 남자 정액이 생각나서’(53) 우유를 마시지 못한다. ‘그녀여전히 무섭’(258), ‘열세 살의 자신이 아직도 만주 막사에 있다’(258)고 느낀다. 한편 그녀가 현재 살고 있는 마을의 삭막한 풍경이나, 친척간의 정이라고는 전혀 없이 임대아파트 입주권을 얻기 위해 그녀를 이용하는 조카의 모습은 가까운 사람에게도 자신이 피해자였다는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채 외롭고 쓸쓸하게 살아온 그녀의 인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한일 양측 정부의 위안부 협상이 있었다. 이를 두고 수많은 논란이 있었고, 특히 위안부 피해자 대부분은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는 협상에 참여한 사람들에게 피해자들이 어떤 일을 겪었고, 그래서 어떤 것을 원하는 지에 대한 공감과 이해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가 피해자들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만, 이런 소설을 통해서라도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며 그들의 깊은 상처를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는 길을 고민해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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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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